◈ 기준바로 잡은 종에게 주시는 역사.(슥4:6-10) 기준 바로 잡은 종에게 역사를 주신다는 것은, 기준 바로 잡지 않은 종에게는 주시는 역사가 없다는 말도 된다. 그 역사를 우리는 모두 받아야 하겠다. 기준 바로 잡은 종에게 주시는 역사는 본문에 스룹바벨 유다총독이 다림줄을 손에 잡고 스룹바벨 성전을 건축을 감독할 때 아주 공의롭게 했다. 누구에게도 공평하게 그 추를 갖다대고 감독을 했기 때문에 유다총독의 감독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유는 공의로 왔기 때문이다 우리도 다림줄로 기준을 바로 잡았다면, 공과 사를 아주 바로 분명하게 해야 한다. 공사가 뒤섞이는 사람은 기준도 바로 잡히지 못한 것이다. 기둥이 비뚤어진 것은 비뚤어진 것이고, 그 사람과 친한 것은 친한 것이다. 스룹바벨 같이 기준을 바로 잡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든지 치우치지 않는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다. 이렇게 사는 종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이 역사는 기준이 바른 사람이 받는 것을 말한다. 1. 항상 깨어 있게 하시는 역사.(슥4:1) -천사가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우임 같다고 했다. 천사가 깨우지 않았으면 자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잔다는 것은 마25:1-13 에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은 교회와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은 교회가 나오게 된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등불을 준비하지 않았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등불을 준비하고 두 부류의 교회가 다시오실 재림의 주님을 사모하고 기다린다. 그러나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새 라고 했다. 이 말씀은 영적으로 신랑이 더디 오니깐 안일과 태만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영적인 모습이 흐트러진 모습, 현실에 안주한 모습 같은 것이 영적으로 잠을 자는 것이다. 이 사람을 슥4:1에 천사가 와서 깨우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 다 졸며 잔다고 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친히 기름등불을 준비한 교회든지 준비하지 못한 교회도 다 졸며 잔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교회가 다 자고 있다. 예배도 안 드리고, 기도도 안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곳에 '신랑이 로다 맞으러 나오라'고 외치는 자, 깨우는 자가 나온다. 우리는 신앙, 사상, 생활도 깨우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슥4:1에 하나님이 다림줄로 기준을 바로 잡고 있는 종은 남을 깨워야할 사명, 외쳐야 할 사명이 있기에 천사가 계속 깨워 주는 것이다. 졸며 잠을 자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이 역사를 받아야 하겠다. 깨어 있는 사람을 합2:1-3에 성루에 서있는 파숫군 이라고 했다. 우리도 성루에 선 파숫군 같이 깨어서 교회를 지키고, 가정을 지키고, 자신을 지켜야 하겠다. 우리가 지켜야할 가정, 교회, 자신을 남이 지켜주지 못한다. 그것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오직 자신이 지키기 위해서 자신부터 깨어있는 파숫군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깨어있어서 교회를, 가정을, 종들을 깨워야 한다. 깨어 있어야 보게 되고, 분별하게 되고, 듣고, 깨닫고, 말하고, 미래를 내다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믿고, 또 이렇게 깨어있는 역사를 받기를 원하는 교회마다 , 가정마다, 종들마다 항상 깨어있는 역사를 주시리라 믿는다. 항상 깨어있는 것이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슥4:1에 천사가 와서 나를 자꾸 깨워줘야 하는 것이다. 즉, 자극을 줘야 하는 것이다. 환난시대에 하나님이 기도를 시키시는 방법이 자꾸 자극을 주시는 것이다. 다림줄로 기준을 바로 잡고 있는 사람은 천사가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우임 같다고 했다. 우리는 깨우는 이유는 잠자는 사람을, 종을, 교회를, 가정을, 가족을 깨우라는 것이다. 이 사람이 하박국선지는 성루에 선 파숫군, 마25 장에 예수님은 외치는 자라고 했다. 하나님이 사람을 깨우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족을 통해서, 배우자를 통해서 깨우시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이 깨우는 역사라는 것을 알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깨어있지 못하는 것이다. 환난시대에는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깨어있어야 보고, 듣고, 깨닫고, 분별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졸며 자면,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깨어나는 역사를 받자! 2. 심령의 성전을 완성하게 하시는 역사. (슥4:2) 성전은 하늘에도 성전이 있고, 땅위에도 성전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심령에도 성전이 있다. 우리의 심령에 성전이 이루어지는데 있어서 된 일의 말씀은 성전을 이루지 못한다. 될 일의 말씀을 머릿돌로 받아들일 때, 그 말씀에는 이루어지는 힘이 있어서 내가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이 들어와 바탕이 된다. 그 위에 진리로 기초를 놓을 때 말씀하나하나 진리하나하나가 내 속에 들어와 마치 벽을 쌓아 지붕을 놓아 집을 짓는 것과 같이 내 심령에 차곡차곡 조밀하게 허점 없이 쌓여 질 때 진리의 성읍, 심령의 성전이 완성되어져 가는 것이다. 그 동안은 심령의 성전이 완성되지 못했다. 짓다가 무너지는 것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기준을 똑 바로 잡은 종에게 하나님의 신의 역사로 아직도 미완성된 부족한 부분들을 하나님의 역사로 채워서 미완성된 부분을 이제는 완성케 하시는 것이다. 짓다 만 건물은 보기에 아주 흉물스러워 진다. 그래서 짓던 성전은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꼭 완성해야 한다. 유형적인 성전은 돈과 기술이 있어야 지어지지만, 우리의 심령 속에 지어지는 성전은 말씀과 진리, 그리고 하나님의 신의 은총이 있어야 심령의 성전이 완성되는 것이다. 심령의 성전을 완성하게 하시는 역사를 우리가 받아야 한다. 환난시대에는 심령의 성전을 지어야한다. 심령의 성전을 짓지 않으면, 심령의 사대 난제가 오게 된다. 심령의 사대 난제 : 공허함, 곤고함, 컬컬함, 곤비함 - 주의 종으로부터 신령한 말씀과 진리가 심령에 채워지지 않으면 심령이 공허해지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함이요, 심령이 컬컬한 것은 성령의 생수를 심령으로 받지 못함이요, 심령이 답답한 것은 영광의 빛을 심령으로 받지 못함이요, 심령이 곤고하고 곤비하여 영적의욕을 상실한 것은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 사49:29-31에 새 힘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령의 성전을 완성해야 한다. 우리는 심령의 의욕이 살아나야 하겠다. 이것이 심령의 성전이 완성 된 증거이다. 심령의 성전을 완성한 사람은 예배 잘 드리고 싶은 마음, 찬양을 잘 드리고 싶은 마음, 기도, 봉사, 감사를 하고 싶은 마음,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뜨거워진다. 심령이 황폐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은 하기 싫고, 사람에게만 잘하려고 하게 된다. 사람에게도 잘 해야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든지 먼저 하나님이어야 한다. 고전3:16에 니 몸이 하나님의 전이라. 계1:20에 그런 사람을 금촛대 교회를 이룬 자 이런 사람을 계11:1에 지팡이 같은 갈대로 심령의 성전이 완성 되었는지 척량한다. 심령의 성전이 완성되면 좋지 않은 것들이 우리 속에 들어오지 못한다. 솔로몬 성전이 완성되고, 법궤가 들어오면서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하게 되었다.그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하므로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내 심령에 성전이 완성되면, 예수님이 내 심령 안에 들어오신다. 그러므로 마귀가 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심령의 성전이 완성되면서 말씀과 진리 되시는 예수님이 법궤가 들어오듯이 예수님이 내 심령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서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한 것 같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이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로 될 것이다. 심령의 성전을 완성하도록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셔서 말씀이 부족하면 말씀을 채워 주시고, 진리가 부족하면 진리를 채워 주시고, 은혜가 부족하면 은혜를 채워 주시고, 성품이 못됐다면 고쳐 주셔서 라도 심령의 성전을 완성케 하셔서 밤낮 하나님께 영광만을 돌리는 삶으로 사는 사람이 되자. 심령의 성전이 세상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성경 속에 있는 말씀, 진리, 은혜, 하나님의 역사로만 되는 것이다. 심령의 성전이 완성되면, 사람은 그 심령애서 만족함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3. 은총 은총을 입혀 주시는 역사. (슥4:6-7) -은총이라는 말은 신으로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심령의 성전은 하나님의 신의 역사가 내려야만 완성이 되는 것이다. 심령의 성전을 이루기 위해서 마지막 때에 부어주시는 은혜를 은총 은총 이라고 했다. 이 은총은 다리오왕 구월 이십사일에 스룹바벨이라는 유다총독이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내린 은혜이다. 심령 성전도 내 마음속에다 머릿돌 되시는 예수님. 즉, 머릿돌은 천년왕국을 건설하시는 예수를 가리킴인데, 천년왕국을 건설하는 말씀과 진리를 내 심령 안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데 받아들이는 방법이 '아멘'이다. 그런 말씀을 전하는 종이 있는 곳에서 아멘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 말씀과 진리가 내 심령에 머릿돌 같이 내 심령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은총 은총이 내리는 것이다. 은총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신으로 되게 하는 역사다. 하나님의 신의 역사. 즉, 은총으로 제일 먼저 큰 산과 같은 교만한 마음이 낮아지게 하는 것이다. 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영적교만인데, 이 교만이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이것은 은총이 자신에게 내려져서 내 심령에 큰 산과 같은 교만을 무너뜨리고, 낮은 곳은 평지가 되게 하고, 그 위에다가 머릿돌을 놓고 심령 성전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런 은총을 스룹바벨에게 내려주고, 다니엘 9장, 10장에 다니엘에게 은총을 내려 주셨는데,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은 신으로 되는 역사가 그 마음을 지배하므로, 그 생각을 지배하므로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 영광을 위해 살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늘 겸비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자기 생각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인데, 은총을 받으면 자기 생각을 접어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은총을 입은 다니엘은 모함을 당해도, 사자 굴에 넣어도 가만히 있었다. 주변사람들만 애 터지지 다니엘 자신은 항상 편안한 것이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가다 나옴으로 자신은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주변 환경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렇듯 은총을 입은 사람은 주변 환경에,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고, 넉넉하고 여유로워 진다. 4. 금기름을 부어 주 앞에 모셔 서게 하시는 역사. (슥4:12-14) -주 앞에 모셔 세웠다는 것은 금기름을 받은 사람 뒤에는 주님이 계시다는 것도 되는 것이다. 다윗이 머리에 기름을 받고 나니 다윗이 전쟁에 나가면 무조건 백전백승했다. 다윗은 여호와가 자신의 뒤에 계시다는 것을 믿었다. 다윗은 여호와는 반석이시고, 피난처요, 산성이요, 목자요, 요새라고 했다. 대적들도 다윗의 뒤에 계시는 여호와 때문에 여호와가 함께하시는 다윗을 두려워했다. 금기름 받은 종은 주 앞에 모셔 서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 종의 뒤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그 종이 어디를 가든지 항상 뒤에 계시는 것이다. 그 종을 주님 앞에 '모셔 서게' 한다고 한 것은 그 종을 존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종 뒤에는 주님이 계시는 것이다. 이런 종은 가는 곳마다 역사가 일어날 줄을 믿어야 한다. 어디를 가도 혼자 간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다 것이 변한다. 그러나 다림줄로 기준 바로 잡은 종은 그 기준 바로 잡은 종은 변하지 마라고, 금기름을 머리에 부어서 변하지 않게 하시는 것이다. 다윗도 평생 동안 여호와를 섬기는데 변함이 없었다. 다윗은 그냥, 기름을 받았지만 우리에게는 금기름을 부어 주시는 것은 다윗보다 더 차원 높은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다. 금기름을 부어 주시면서 머리에 지혜, 총명, 명철, 영감, 통달하는 영을 주시는 것이다. 머리에서 혼잡이 다 떠나가고 머리에 개조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님이 다윗 이상의 사람으로 쓰시는 것이다. 이런 은혜를 미5:5에 일곱목자, 여덟군왕 같은 종이라고 했다. 자기 생각, 자기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잡으면 안 된다. 말씀으로 기준을 바로 잡아야 한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자아가 강하면 자기 생각을 고집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자기라고 하는 자아가 강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아가 죽어져야 한다. 금기름을 머리에 부어 주님이 항상 함께 계신다는 보장을 주신다. 다윗도 자기가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다림줄로 기준 바로 잡은 종에게는 여호와께서 다양하게 보장을 해 주신다. 또한 그 종의 영적 차원이 높아지게 된다. 5. 일곱눈으로 통찰하시는 역사. (슥4:10). 여호와의 눈이 일곱이라. 그것이 계5:6에 일곱 눈이라고 했다. 은혜시대에 내린 성령을 보혜사라고 했다.(요14:16-17, 26) 오순절에 내린 성령의 역사를 가리킴이다. 이 성령의 역사는 기독교를 시작하게 하시는 역사. 그런데 기독교 종말에 역사를 기준 바로 잡은 종이 나와서 마쳐지는 역사를 할 때는 일곱눈의 역사같이 일곱영이 일곱눈으로 전 세계를 통찰하시는 여호와의 눈의 역사로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눈으로 세계를 통찰하신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과 뜻까지 감찰하시는 것이다.(계 2장) 이런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하신 성령의 역사를 기준 바로 잡은 종에게 부어서 종말의 이 엄청난 역사를 그 종으로 하여금 이루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통찰하시듯 우리도 눈이 열려 보고 말하고, 보고 전하고, 보고 설교하는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이다. 이것이 종말의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이다. 이 완전한 역사를 받아 불완전한 우리가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우리가 완전한데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일곱영, 일곱등불, 일곱뿔, 일곱눈의 역사, 완전한 역사로 완전한데 나아가게 하신다.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까지의 역사를 받으면 사람을 살리게 된다. 결론 : 신으로 되는 역사가 계속 되는 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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