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림줄로 기준 바로 잡은 종. (슥4:12-14)
다림줄이란 수직을 보는 기준인데 스룹바벨 총독이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스룹바벨 성전을 건축할 때 다림줄을 손에 들고 성전건축을 지도했다.
다림줄이 육적으로는 수직을 보는 기준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이 시대에 기준으로 주신 말씀과 진리다. 우리가 바로하지 못하는 것은 기준이 바로 되지 못했기 때문이기에 말씀과 진리로 기준을 바로 잡아야 한다.
1) 정로로만 가는 종. (사30:20-21)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정로로만 가야하는데 이는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며 요14:6절에서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2)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가는 종. (창12:1-4)
아브라함이 75세에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갔듯이 우리가 말씀을 쫓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은혜시대에 된 일의 말씀을 쫓아갔다면 환난시대에는 될 일의 말씀을 쫓아가야 한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갔지만 그의 조카 롯은 아브라함을 쫓아갔는데 결국 롯도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롯은 소돔성 앞에서 더 이상 아브라함을 쫓아가지 않고 환경을 따라가므로 처음에는 잘되는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육적으로도 안 되고 영적으로도 안됐으니 암몬과 모압이라는 족속, 지금의 회교국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은 물과 초장이 흔하지 않은 땅을 택했지만 끝까지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가므로 롯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우리가 현실이나 환경을 쫓아가지 않고 말씀과 진리로 기준을 바로 잡고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가야 한다.
3) 백마의 사상을 가진 종. (계6:2, 계19:14-15)
백마의 사상이란 복음의 절대성인데 말씀과 진리로 기준을 바로 잡았다면 백마의 사상을 무장하게 된다.
붉은 말은 공산주의, 검은 말은 자본주의, 청황색 말은 궤휼주의로 저마다의 사상을 가지고 활동하는데 이를 적마의 삼세력이라고 하며 백마의 사상을 가졌다면 자신에게 손해가 있다하더라도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는다.
엘리야가 바알선지나 아합 왕이나 이세벨과 타협하지 않았고, 나봇은 죽을지언정 열조가 남긴 포도밭을 아합 왕에게 넘기지 않았고,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에 들어갈지라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다. 우리가 백마의 사상으로 복음의 절대성이 있다면 사람이나 환경이 아무리 역사해도 흔들리거나 떨어지지 않는다.
4) 조성받은 종. (사43:1)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쓰시려고 지명해 두신 종이 있는데 이 종을 조성하시니 이는 될 일의 말씀으로 재창조하시는 역사다.
조성받은 사람은 갈4:19, 빌3:21, 고전15:44-49절같이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게 되는데 창1:26-28절에 범죄하기 전, 타락하기 전, 선악과 따먹기 전의 사람,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창조함을 받았던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이 재창조함을 받지 못하면 물질 때문에도 기준이 흔들리고 사람 때문에도 기준이 흔들리게 된다.
5) 많은 사람을 살리는 종.
다림줄로 기준 바로 잡고 정로로 행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가고 백마의 사상을 무장하여 조성 받은 종은 사람을 살리게 된다.
예수님을 세 번부인한 베드로가 사람을 살린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성령의 역사를 받을 때 사람을 살렸다. 우리에게 죄가 있고 말씀으로 기준이 잡혀있지 않다면 절대로 사람을 살릴 수 없는 것이다.
단12:3절에 다니엘 선지자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궁창에 빛나는 별빛 같은 종이라고 하였다.
결론 : (계3:12) 성전에 기둥 같은 종으로 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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