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난시대에 사람을 살리는 종의 바른 신앙. (단12:3)
이런 시대에 떨어진 별이 나와서 쑥물로 혹은 흑암으로, 거품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있지만 우리는 이 환난시대에 사람을 살리는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대는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 바른 정도로 갈 때에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시대에 사람을 살리는 종의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한다. 1) 다림줄로 기준 바로 잡은 신앙. (슥4:10)
히브리민족이 칠십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다가 돌아왔을 때에 그들의 구심점이 되는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운동을 일으켰다. 그 때에 총독이 스룹바벨이며 그가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총감독이 되었으니 그가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성전 짓는 일에 수직을 보는 기준을 삼았다. 기둥을 세우는 일에도 벽을 세우는 일에도 벽돌을 쌓는 일에도 다림줄을 가지고 다니며 수직의 기준을 잡으니 목수가 아무리 자신의 기준으로 세웠다고 하여도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에 맞지 않으면 그 기둥을 다시 바로 잡아야 했다. 의견이 분분하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이라도 그 다림줄 앞에 자신의 주장을 내리고 모두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시대에 누가 꿈을 꾸고 이상을 보았다고 하며 영계는 혼탁하고 말씀은 흐려져 있는 환난시대에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 시대에 주신 말씀이 다림줄같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 기준을 바로 잡으면 자신도 살고 더 많은 사람을 이 환난시대에 살려낼 수 있는 역사가 다림줄, 이 시대에 주신 말씀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와 비진리이냐를 따지기 전에 말씀의 기준이 바로 서있다면 말씀이 그들을 다 복종하고 순종하고 함구하도록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림줄로 기준을 확실히 잡으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수직의 기준이 틀어지지 않아 늘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고 마귀가 절대로 참소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이슬같이 단비같이 내려주셔서 우리의 영혼이 만족한 삶을 살도록 풍요로운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말씀에 기준이 흐트러지면 마귀는 우리를 참소하고 비진리가 흔들고 미혹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수직의 기준이 틀어졌기에 하나님과의 교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지 못하므로 그 심령이 황폐해지고 생활이 곤고해지는 것이다. 2) 정로로만 바로 가는 신앙. (사30:20-21)
창12:4절에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 아비집을 칠십오세에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고 그 말씀대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출발하였으니 그가 말씀을 쫓아갔다고 기록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쫓아가고 이익이 되는 곳을 쫓아가고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쫓아가지만 이런 길은 정로가 아니며 정로가 될 수도 없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가는 것을 정로로 알았다. 또한 예수님은 정로를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이며 협잡하여 찾는 이가 적은 길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좁은 길을 버리고 협잡한 길을 버리고 정로를 버리고 대로로 가며 편안한 길로 가려고 하지만 사33:7-8절에 이사야 선지자는 대로가 황폐해진다고 하였다. 사33:7-8절의 말씀이 이루어지면 많은 사람이 찾았던 대로는 황폐해지고 찾는 사람이 없어지게 되므로 찾는 이가 적어도 협잡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가는 정로로 가야 한다. 거기에는 고난도 아픔도 고독도 있지만 아름다운 결말을 내다보아야 한다. 출애굽 하여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것이 정로인데 그 길을 가려고 하지 않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그곳에 머물려고 하였다. 그러나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것이 정로임을 주장하며 옷을 찢기까지 하였고 결국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가 되고 갈렙은 이스라엘 족장 중에 위대한 족장이 되었다. 3) 자신을 바로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신앙. (약1:27)
예를 들어 세상의 어떤 화려한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외모나 모습을 따라하려고 하고 흉내 내려고 한다면 이는 세속에 물든 사람이다. 우리가 가는 길이 정로라면 세상 것을 본받지 않아야 하고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세상의 사람과 똑같은 생각, 똑같은 이상,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세속에 물든 사람이다. 자신이 세속화되기 시작하고 세상에 물들기 시작하면 이미 경건은 깨진 것이며 하나님과의 영적관계가 끊어진 것이다. 우리가 자신은 세속에 물들지 않았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속에 물들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세상에서 우리 직장 일을 열심히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자기 육체의 영화를 위한 것이라면 이미 세속에 물든 것이며 자신이 직장에서나 사업에서 열심히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교회를 잘 받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는 삶이 되어야 하며 이 삶이 가치 있는 삶이다. 다니엘이나 다니엘의 세친구는 바벨론 속에 갖다 넣어도 바벨론의 물이 들지 않았으니 자신이 어디에 사느냐 어떠한 환경 속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4)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지혜있는 신앙. (마24:45-46)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은 형들의 손에 팔려 애굽에 들어갔지만 옥중에서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여 주었으니 애굽 전역에 칠년 동안 풍년이 있은 후에 칠년 동안 흉년이 오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꿈을 해석한 요셉은 왕의 인장반지를 끼고 칠년 풍년동안 칠년 흉년을 대비하였고 흉년이 닥쳤을 때에 그 양식으로 애굽 전역의 사람과 자신의 가족을 살렸다. 암8:11-13절에 사람들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동에서 북까지 비틀거림 치며 여호와의 말씀을 찾지만 찾지 못하여 다 갈하여 피곤해진다고 했다. 이러한 때에 마24:45-46절같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지혜있는 종이 되어야 하며 이런 종을 예수님이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자신부터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하늘의 지혜를 받아야 한다. 5) 믿는 자의 본이 되는 신앙. (딤전4:12-13)
우리가 환난시대에 사람을 살리는 바른 종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예수님의 향기를 날리는 생활이 된다. 이러한 행실 속에 교회가 부흥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성도와 성도끼리 주의 종과 성도끼리 좋은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결론 : 남을 살리려는 종 자신이 먼저 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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