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 왕의 타협 [사 39:1-8]
은혜시대는 원수까지 사랑하는 복음이지만 환난시대는 원수를 진멸해야 한다. 환난시대 원수를 사랑함은 곧 타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면 안되는 것을 인정이나 사정에 매여 따라감이 즉, 타협이 되는 것이다. 이사야 36장에서 앗수르가 침입하였고, 37장에서 기도로 십 팔만 오천 앗수르 인을 시체로 만들었으며 38장에서 죽게된 히스기야가 기도로 생명을 연장 받았으나 39장에서 타협으로 그 쌓아놓은 기도가 모두 수포로 돌아갔으니 타협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1. 글과 예물에 속아 타협
히스기야 왕은 그의 왕궁에도 보물과 은금이 가득했으나 바벨론에서 보낸 글과 예물에 속아 타협하게 되었다. 그는 어려운 일과 고난이 있을 때마다 기도함으로 문제를 해결 받았으나 평안해졌을때는 기도하지 않았다. 대적도 없고 죽을 일도 없고 도리어 글과 예물을 바벨론에서 보내 왔으니 걱정 거리가 없어진 히스기야는 기도를 쉼으로 글과 예물에 미혹되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궁의 모든 보물과 은금을 자랑삼아 그들에게 다 보였으니 이것은 예루살렘이 함락당하는 주원인이 된 것이다.
2. 기도해야 하는 사람이 기도를 쉬었다.
히스기야는 지금껏 기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받았던 왕이었다. 그러나 글과 예물에 눈이 어두워지고 곧 영계가 어두워짐으로 인하여 바벨론 사신이 적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였던 것이다.
3. 글과 예물에 분별력을 상실 하였다.
그는 글과 예물을 기뻐하여 영계가 어두워지고 기도하지 않았기에 분별력을 상실한 것이다. 영의 사람에게 분별력은 생명이다. 이는 마치 더듬이가 떨어진 개미가 방향 감각을 잃고 길을 찾지 못하여 죽게 되는 것과 일반이다. 분별력을 상실하면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에서 떨어지게 되고 이는 곧 방황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 시대의 말씀과 진리로 기준을 바로 잡고 분별력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겠다.
4. 예루살렘이 함락 당하였다.
히스기야 왕은 바벨론 사신들에게 모든 보화를 다 보여주었고, 그들은 그길로 돌아가서 오랜시간 동안 예루살렘을 함락하기 위하여 전쟁을 준비하였다. 수십년이 흐른 뒤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을때 바벨론은 예루살렘에 쳐 들어와 모든 보화를 하나도 남김없이 탈취하고 사람들을 모두 굴비 엵듯이 하여 포로로 잡아가며, 시드기야 왕의 두 눈을 빼앗기까지 하였다. 예루살렘을 지키기엔 수많은 어려움이 따랐으며 눈물의 기도가 필요했으나 빼앗기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이처럼 타협은 무서운 것이다.
5. 선지자에게 묻지 않는 히스기야
바벨론 사신들에게 궁의 모든 것을 보이기 이전에 그는 먼저 선지자 이사야에게 조언을 구했어야 했다. 이사야는 중요할 때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히스기야 왕에게 전달해 주었고 모든 난제를 해결케 하였다. 만일 그가 바벨론 사신이 왔을때에 이사야의 조언을 구했더라면 예루살렘이 함락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유다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자신이 분별이 안될때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조언을 구함이 슬기로운 처세이다. 그는 기도로 승리했던 왕이었으나 결국 글과 예물에 눈이 어두워 한국가를 망하게 하고 말았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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