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시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 (합2:1-3)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는 바라보고 사는데 자신은 무엇을 바라보고 사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배우자를 바라보고 사는지, 자녀를 바라보고 사는지, 물질을 바라보고 사는지, 아무 생각 없이 사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우리에게 묵시를 바라보고 사는 삶이 되라고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선지서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미래에 하나님이 예정하고 계신 일 모두가 묵시인데 우리는 이 묵시를 바라보고 살므로 기쁨도 있고, 삶의 가치도 있는 것이다.
1) 묵시를 바라보고 깨어있는 사람. (슥4:1)
묵시를 바로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는 깨어있어야 하는데 슥4:1절에서 천사가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우임같더라고 하였고 사52:1절에서도 시온이여 깰찌어다 깰찌어다 하였다.
마25:5-6절에 미련한 처녀나 슬기로운 처녀나 다 졸며 잘 때에 자지 않고 깨어서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하며 외치는 자가 있다. 기독교 전체가 잠을 자고 있다 하여도 우리는 소명감을 가지고 깨어 있어서 지켜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묵시를 바라보게 하신 것은 깨어서 묵시를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파수꾼의 심정을 가지고 매일 매일 깨어 있어야 한다.
잠을 잔다는 것은 안일과 태만, 게으름에 빠져있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잠을 자고 있다면 파수꾼의 사명을 망각한 것이요, 분별할 수가 없다.
우리가 깨어 있기 위해서는 살전5:1-6절같이 영광의 빛을 받은 빛의 아들이 되어야 하는데 다 밤중을 만나 졸며 자도 빛이 비추어 지므로 졸며 자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묵시를 바라보고 깨어있으려면 영적으로 밤이 되어서는 안되며 영적으로 낮이 되어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깨어있어 근신해야 한다.
2) 묵시를 바라보고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 (합2:2)
묵시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라면 사람 중심, 환경 중심, 가족 중심, 물질 중심, 자녀 중심으로 살아가지 않고 오직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합1:2-4절 같은 일들과 합1:13절 같은 일들을 이해할 수 없어 합2:1절에서 질문을 하니 합2:2절에서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라고 하셨다.
이 묵시의 말씀을 마음 판에 명백히 새길 수 있도록 말씀을 무장해서 말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말씀을 귀로 듣고 머리로 묵상하되 그 말씀을 꼭 마음 판에 새겨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말씀을 머리로만 안다면 돌연변이가 되고 만다. 우리의 마음을 말씀이 지배해야 한다.
고후3:3절에서는 먹으로 쓰지 말고 심비에 새기라고 하였으니 먹으로 쓴 것은 지워질 수 있어도 심비에 새긴 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잠3:3절에서도 마음 판에 새기라고 하였다.
묵시를 바라보고 있다면 그 묵시의 말씀을 중심으로 새겨서 달려가는 것 같은 분주한 생활 속에서도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긴다면 그 말씀이 살아서 운동하고 역사하고 그 마음을 말씀이 절대적으로 지배하게 되기에 말씀 중심으로 안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말씀이 마음을 주관하고 지배하고 감동시키고 운동하고 역사하면서 그 마음을 하나님이 지배해주셔야 하는 것이다.
사66:2절에는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 앞에 떠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말씀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듯이 말씀을 접해야 하는 것이다.
창12:4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떠는 아브라함은 칠십 오세에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났다. 여호와의 말씀에 떠는 아브라함은 떠나라면 떠나고, 받치라면 받치고, 보내라면 보내며 정직한 신앙을 가졌다.
3) 묵시를 바라보고 물러설 줄 모르는 신앙. (히10:37-39)
자기 앞에 장애, 장벽, 대적, 난제가 있다 하여도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만 나가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히10:37-39절에서는 주의 강림이 가까울 때 우리는 물러서지 않아야 한다고 했으니 뒤로 물러서면 침륜에 빠지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사50:4-5절에서는 말씀 듣는 귀를 하나님이 열어주시면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고 하였다.
미5:7-9절같이 이슬과 단비를 받아 용사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다윗은 싸움터에서 단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으니 여호와가 자신의 목자요, 방패시요, 산성이시요, 피난처시라고 고백하며 두려움이 없이 전쟁터에서 용사같이 싸운 것이다. 우리가 두려움이 없는 젊은 사자 같은 용사의 신앙이 된다면 물러설 줄 모르는 사람이 된다.
예수님도 손에 키를 들고 뒤를 돌아다보는 자는 천국에 합당하지 못하다고 하셨고 소돔성에 롯의 가정이 구원을 받아 나올 때도 뒤돌아보지 말라고 법을 주신 것이다.
환난시대 미래의 될 일을 받아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는 뒤로 돌아서면 은혜시대, 된 일이기에 물러설 줄 모르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4) 묵시를 바라보고 흔들릴 줄 모르는 사람. (사26:2-3)
묵시의 말씀이 확실하다면 물러서지도 않아야 하고 또한 흔들려서도 안된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사26:2-3절같이 심지가 견고한 신앙이 되어야 하는데 말씀의 뿌리, 신앙의 뿌리가 깊이 내렸다면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람, 물질, 환경, 생활, 가족 등 육적인 일로 인하여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5) 묵시를 바라보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 (합2:3)
율법주의자들이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종들을 잡아 가두고 죽여도 결국 율법시대는 막을 내리고 은혜시대 십자가 복음이 기독교 이천년 사를 이루었다.
율법으로는 하나님이 기적과 축복을 아무리 많이 내려주셔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하나도 온전하게 만들지 못하였지만 십자가 복음은 아무리 핍박해도 세계적인 복음이 되었다.
말세의 복음은 정한 때를 기다려야 하기에 인내하는 복음이다. 정한 때가 되면 지체되지 않고 거짓되지 않고 정녕 응하여진다.
정한 때는 예언이 있다면 성취되는 때요, 언약이 있다면 이루어지는 때요, 약속이 있다면 시행되는 때요, 기도한 것이 있다면 기도가 응답되는 때가 있는 것이다.
이사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예언하였고 그것이 750년이 지나서 이루어졌다.
결론 : 말씀에 붙들려 말씀 따라 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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