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난시대에 복 있는 사람. (계1:1-3, 계8:13)
계8:13절같이 화받을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환난시대에 화받을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고 복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계8:13절에서 세 번 화, 화, 화 한 것은 첫 번째 화는 황충이로 오는 화, 두 번째 화는 유브라데 전쟁으로 오는 화 세 번째 화는 계16장과 같이 진노의 일곱 대접으로 오는 화다. 복 있는 사람의 반열에서 그 경계를 넘어서면 화받을 사람의 길을 가게 되니 자신이 복 있는 자리에 있다면 그 자리를 잘 지켜야 한다. 1) 자신의 자아를 죽이는 사람.
우리 속에 잠재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자아가 죽어져야 이 환난시대에 복 있는 사람이 된다. 사도요한은 밧모섬에서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머리가 열려져서 심판주로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그 모습을 보고 사도요한은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다. 그러한 사도요한에게 예수님께서는 그 머리위에 손을 엎고 안수하여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하셨다. 심판주 앞에서 죽은 자같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사도요한의 자아, 육신의 소욕, 인간성과 죄악성이 죽어진 것이고 예수님의 기도와 생명의 기운, 말씀을 통해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사도요한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으니 은혜시대 종이 아닌 환난시대 종으로서 새로운 변화, 새로운 차원,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는 결정적 순간이 온 것이다. 우리 또한 옛 사람의 탈을 벗고 자신의 자아를 벗고 육체의 소욕을 벗고 주님의 손길에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남을 이기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난시대에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말씀에 있고 진리에 있다. 사도요한이 예수님의 말씀, 은혜, 안수기도를 통해서 새로운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과 진리로만 자신의 자아를 이길 수 있다. (계22:11)불의하고 의로운 기준, 더럽고 거룩한 기준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이다. 주님이 정해놓으신 경계가 있는데 의로운 자의 반열에 있다면 절대로 불의한 자의 경계를 넘어가서는 안된다. 그 경계를 넘어간다면 다시 의로운 반열에 넘어올 수 없으니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불의한 자의 경계를 절대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거든 절대로 더러운 자의 경계를 넘어서는 안되는데 더러운 자의 경계를 넘어가 더러운 자로 확정되면 다시는 거룩한 자의 반열에 들어 올 수 없는 것이다. 화받을 사람은 자꾸 불의한 자의 경계를 침범하려고 하고, 더러운 자의 경계를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 경계를 넘나들다가 불의한 자, 더러운 자로 확정되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까 두려워해야 하며 자신이 의로운 자와 거룩한 자의 반열에 있다면 그 자리를 잘 지켜야 한다. 한번 떨어진 별이 다시 붙들릴 수 없는 것같이 확정하시는 때가 되기 전에 불의한 곳에 있다면 의로워져야 하겠고, 더러운 곳에 있다면 거룩해져야 하겠고, 염소 쪽에 있다면 양의 속에 속해야 하겠고, 쭉정이 속에 있다면 알곡으로 확정되어야 한다. 말씀과 진리로 끝까지 싸워서 자신을 이기고 승리자의 반열에 서야 한다. 절대로 패배자의 경계를 넘어가서는 안된다. 2)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사람. (계1:3)
예언의 말씀이 환난시대를 살아가는 지침서며 기준이기 때문이다. 사도요한이 눈이 열려 기록한 예언의 말씀을 눈이 열려 읽어야 하며 사도요한이 귀가 열려 들은 것을 기록하였으니 예언의 말씀을 귀가 열려 들어야 그 사람이 이 시대에 복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화받을 사람인 것이다. 3) 성령의 감동 속에 사는 사람. (계1:10)
계4:2절에서 성령의 이차 감동을 받으면서 그 영혼이 보좌세계에 갈 수 있었으니 사도요한은 성령의 일차 감동, 이차 감동을 받으면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최고의 영계의 차원에 도달하였다. 사도들을 성령으로 감동하여 설교자로 권능자로 은혜자로 쓰신 것같이 사도요한에게 주셔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하셨던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계4:5, 계5:6절과같이 일곱 영의 감동으로 주시면 불완전한 우리를 완전하게 하여주신다. 성령의 감동 속에 찬양하고 기도하고 설교하고 봉사하고 성경을 읽고 성령의 감동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의 감동이나 잘못된 사람의 말에 감동, 미혹의 영의 감동, 귀신의 영의 감동, 자신의 인간성 죄악성의 감동, 자신의 자아에 의한 감동을 받아서는 절대로 안된다. 성령의 감동이 아니면 말하지 않고, 성령의 감동이 아니면 찬양하지 않고, 성령의 감동이 아니면 기도하지 않고, 성령의 감동이 아니면 설교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감동 속에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이 있게 된다. 요한계시록은 사도요한이 성령의 감동 속에 기록하여 놓은 말씀이기에 성령의 감동 속에 풀어지는 말씀이 아니면 요한계시록의 말씀에는 답이 없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 속에 사는 사람이 이 시대에 가장 복이 있는 사람이다. 특히나 주의 종들이라면 어떤 일이 자신에게 부딪혀 와도 자신의 감정이 움직여 말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으로 답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감동 속에 말하고 답해야한다. 사도요한이 말한 일곱 영의 성령의 완전한 역사로 감동을 받아야 하며 우리가 성령의 감동 속에 사는 사람으로 확정되어야 한다. 4) 주의 손에 붙들려 사는 사람. (계1:20)
그러나 환난시대에 될 일의 말씀에 붙들려 빛을 발하고 사람을 살리며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복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될 일의 말씀에 붙들려 미래를 향해 달려갈 때 하나님께서 예정하여 놓으신 축복을 받게 된다. 될 일의 말씀에 붙들리기만 한다면 가면 갈수록 완전해지고, 가면 갈수록 새로워지고, 가면 갈수록 변화되고, 가면 갈수록 흠이 없어지고, 가면 갈수록 차원이 높아지고, 가면 갈수록 밝아지고, 가면 갈수록 지혜로워지고, 가면 갈수록 은혜로워지고, 가면 갈수록 사람을 살려내고, 가면 갈수록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의 축복 속에 붙들려서 가면 갈수록 좋아져야지 가면 갈수록 화를 받을 경계를 넘어가서는 안된다. 우리의 생각도, 마음도, 행동도, 생활도, 모든 것을 주께서 붙들어 주셔야 한다. 잘못된 곳으로 경계를 넘어가지 않도록 영원토록 붙들려서 사람을 살려야 한다. 5) 하나님이 인정하여 비밀을 보이시는 사람. (계1:1)
모세를 사랑하고 인정하시기에 히브리민족 이백만의 생명을 그 손에 맡기셨고 사도요한을 사랑하시고 인정하시기에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인정하시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보이신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로 나쁜 쪽으로 그 경계를 넘어서도록 하지 않으시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깨닫게 하시고 돌이키게 하신다. 하나님이 노아를 인정하셨기에 홍수의 비밀을 보이셨고 아브라함을 인정하셨기에 소돔성의 비밀을 보이셨고 모세를 인정하셨기에 율법의 비밀을 보이셨고 사무엘을 인정하셨기에 엘리제사장과 이스라엘에 대한 비밀을 보이셨고 사도들을 인정하셨기에 천국의 비밀을 보이셨고 바울을 인정하셨기에 그리스도의 비밀을 보이셨고 사도요한을 인정하셨기에 하나님의 비밀을 보이셨고 하나님이 인정하신 종에게 요한계시록의 비밀을 보이신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 종에 대한 모든 것을 보았고 형제도 비난한 모세를 여호수아는 그 종에 대하여 절대로 말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좋은 협력자 여호수아를 좋은 지도자로 세우셨다. 이 시대에도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의 좋은 협력자가 될 때에 독립하여 말씀을 전할 때에 좋은 지도자로 세우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에게 비밀을 보여주시고 그 종의 현실이 지도자라면 최고의 지도자로 살게 되고 자신의 현실이 협력자라면 좋은 협력자가 되게 된다. 자신이 좋은 협력자가 되었다가 좋은 지도자가 된다면 그 지도자에게 좋은 협력자가 생기게 된다. 결론 : 화를 받지 않는 복 있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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