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식의 새 축복. (사58:13-14)
환난의 바람은 불어오지만 환난의 바람 속에서도 하나님이 지키시는 사람에게는 안식이 있다.
1) 심령의 안식의 새 축복. (갈5:16-17)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부딪히므로 심령의 전쟁이 일어났는데 육체의 소욕이 죽어지면 심령의 전쟁이 끝나면서 심령의 안식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4:4절같이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을 받아 육체의 소욕이 죽어져야 한다.
우리가 현재에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한다면 심령이 평안해질 수 있으며 우리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심령이 평안치 못한 것이 다 욕심에서 오는 것이다.
약1: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하였으니 욕심이 사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2) 가정의 안식의 새 축복. (시91:9-10)
가정이 평안하기 위해서는 심령의 안식을 가지고 심령이 평안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가정이라야 한다.
가정에 우환과 질고가 계속되면 가정에 안식이 사라지지만
지존자로 거처를 삼으면 재앙이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니 가정에 안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 가운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은 가정의 안식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노아의 가정은 가정의 안식을 이룬 복 받은 가정이다.
우리가 마지막 복음으로 하나를 이룬 가정이 된다면 가정에 안식의 축복이 찾아오고 평안함이 있게 된다.
3) 토요안식의 축복. (출20:8-11, 창2:1-3)
창2:1-3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하셨으므로
출20:8-11절에서 일주일 중에 마지막 날, 토요안식을 지켰다.
4) 주일안식이 새 축복. (사58:13-14)
주일안식을 안 지키면 심령이 평안치 않고 가정이 평안치 않게 되며 나아가서 천년안식에 들어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주일날 세상일을 하지 않고 교회에 와서 낮예배 밤예배를 잘 드린 거로 주일안식을 잘 지켰다고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토요안식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개념에서 더 진보하여 발을 금하고 오락을 행치 말며 사사로운 말까지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주일안식을 바로 지키지 못한 사람은 금식으로 그 죄를 해결해야 한다.
5) 천년안식의 새 축복. (사58:14, 계20:4-6)
주일안식을 잘 지킨 사람은 천년안식의 축복을 받게 된다.
히브리민족이 광야에 나와서 토요안식을 바로 지키지 못한 사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준 그림자다.
6) 무궁 안식의 축복. (계21:1-4)
눈물이 없고 아픈 것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곳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영원히 거하는 축복이 무궁 안식의 축복이다.
우리가 무궁 안식을 향해 가는 길에서 주일안식을 바로 지키지 못하여 이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안 된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에 먼저 주일 안식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바로 지켜서 위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본인에게는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고 무궁 안식까지 들어가는 축복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