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시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3:7)

 

[이사야40강]21/11/16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사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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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강해 40

 

이사야 제 11- 신정통치시대를 이루시는 역사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 사11:2

여호와의 신이 여섯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신을 부어주시는데 여섯 가지 역사를 나타내신다는 의미로 알아야 한다.

=> 신은 한 분이신데, 지혜, 총명, 모략, 재능, 지식,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으로 역사해주신다는 말씀이다.

우상을 경외하지 않고 명예나 권력이나 물질, 사람을 경외하지 않고 여호와만을 경외하게 된다. 이렇게 만드시기 위해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을 내려주시는 것이다.

33:6같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보배를 삼게 된다.

=> 평안함을 주시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충만하게 하실 것이다.

40:29~31같이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주셔서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게 하신다.

=> 넘어지지 않는다. 곤비하지 않는다. 곤비하지 않는다.

17:7~8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 같아서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고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다고 하였다.

반대로 렘17:5~6에서는 사람을 의지하고 권력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3:16~18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특별한 소유로 삼으신다.

이러한 특별한 역사를 받을 사람에게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을 부어주셔서 하나님만을 경외할 수 있도록 그 마음이 사로잡히게 하신다.

 

여호와만을 경외하게 하시는 것은 생각과 마음이 사람에게 빼앗기지 말고, 키우는 동물에게도 빼앗기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를 받은 사람은 사43:7, 49:3같이 살아야 한다.

43:7같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다.

영광 받으시는 방법은 예배다.

예배를 통해서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와서 경외하는 마음이 생겨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해야 될 사람이 사람이나 동물에게 마음을 빼앗긴다면, 창조의 목적과는 위배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여호와께 영광 돌리는 삶에서 더 나아가 사49:3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동성혼 - 창조에 위배되고 성경에 위배된다. 망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세상의 역사, 기독교의 역사다. 성경을 떠나면 안 된다.

과거도 성경을 통해서 조명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도 성경을 통해서 바라보고, 미래를 바라보는 것도 성경을 통해서 기준을 삼는 것이 정로며 정도다.

이 정로와 정도를 떠나면,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목적지에 갈 수 없게 된다.

 

마지막에 구원의 축복을 갈 사람에게는 여호와의 신을 부어주신다. 반대는 귀신의 영이다.

우리시대는 귀신의 영을 받느냐 여호와의 신을 받느냐다.

그런데 귀신의 영도 모르고 여호와의 신도 모른다면, 무엇을 받겠는가.

귀신의 여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어도 귀신의 영은 들어오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고 귀신의 영에 대해 배우지 않았어도 성경의 예언대로 귀신의 영은 들어오는 것이다.

귀신의 영 계16:3~4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나온다.

16:16 - 세 영이 아마겟돈으로 왕들을 모은다.

18:1~3

여호와의 신을 받은 종들도 모이고, 귀신의 영을 받은 사람들도 모이게 된다.

예수님 시대에도 군대 귀신이 무저갱에 들어가라고 하시지 않기를 구하고 돼지 떼에 들어가기를 구하였다. 돼지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귀신의 영이 바다로 돼지를 끌고 들어갔다.

이와 같이 사람에게도 귀신의 영이 들어가면 자신의 생각과 마음과는 상관없이 귀신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귀신의 영이 들어오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도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와야 한다. 그래야 여호와만을 경외하는 영적으로 가장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종은 귀신의 영이 들어올 수 없다. 여호와의 신이 내리기 때문이다.

마지막에는 어떤 신의 지배를 받느냐가 중요하다.

=> 귀신의 영이 지배하면 현재 어떻게 살아가든지 그 사람의 삶은 끝장나는 것이다. 귀신의 영이 들어오면 다시는 나가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3. 진정한 영의 사람을 만드신다.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5:17~19 - 성령의 소욕, 육체의 소욕

=>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사람을 영의 사람,

=>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육의 사람이라고 한다.

성령의 소욕도 있지만, 육체의 소욕도 있기에 영의 사람으로 살면서도 육의 사람의 모습이 자꾸 나오게 된다.

성령이 계시기에 성령의 소욕으로 영의 사람으로 살고는 있는데, 몸을 가지고 있기에 몸을 통해서 육체의 소욕이 살아나면서 육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영의 사람과 육의 사람 중에서 비중이 어느 쪽에 더 치우쳐 있냐는 것이다.

바울은 성령의 소욕에 대해 말하였는데, 사도요한은 계1:10, 4:2에서 성령의 감동을 말하였다.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성령의 소욕이 일어난다.

성령의 소욕은 육체의 소욕이 일어날 때, 충돌이 일어나고 육체의 소욕이 강하면 성령의 소욕이 질수도 있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영의 사람 같을 때도 있고, 육의 사람 같을 때도 있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성령의 소욕에 대하여 말하였고, 사도요한은 성령의 감동을 말하였다.

=> 성령의 소욕을 가진 사람은 육체의 소욕도 함께 있지만,

=> 성령의 감동은 영과 혼과 몸까지 성령으로 온전하게 사로잡힌 것을 말한다.

11:2같이 여호와의 신이 오면, 3절과 같이 진정한 영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도요한은 성령의 감동으로 주님과의 만남도 있었고, 보좌 세계에까지 이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성령의 소욕으로는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3절에서 말한 2절과 같이 여호와의 신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2:29~30같이 신을 받은 남종과 여종을 말한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우리가 신을 받기를 원하지만, 현재의 삶 속에서 신을 받으면 살아갈 수 없다.

온전히 하나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주신 사람은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생활과 환경이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언을 받은 집사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사건

=>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 사이에서 시각 차이, 견해 차이가 발생하는데 신을 부어주시면 더 큰 차이가 발생하기에 지금은 부어주시지 않는 것이다.

 

35:10 -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얻지 못한 사람은, 이 즐거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호와의 신을 받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즐거움이다.

진정한 영의 사람 첫 번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이다.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진다. 3:17~18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은 세상에서 얻는 즐거움은 버리게 된다.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찬송하는 즐거움이다.

기도가 즐거워지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 즐거워지고, 성경을 읽는 것이 즐거워진다.

연보하는 즐거움이 있다.

인색함이 없이 하나님께 드릴 때 얻게 되는 즐거움이다. 23:18

찬양, 기도, 말씀, 연보를 통해 얻는 즐거움은 예배를 드리는 즐거움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에 있어 근본은 예배에 있다.

4:22~24같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였다.

=>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 진리로 드리는 예배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얻는 진정한 영의 사람이 되었다면, 예배가 즐거워져야 한다.

중생하였을 때, 끊임없이 드리고 싶었던 것이 예배였다.

은혜가 떨어진 사람은 예배시간에 늦고, 예배에 빠지고, 예배 시간에 졸고, 인색함으로 연보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남종과 여종에게 오면, 지금까지 우리는 이렇게 살지 못하였어도 진정한 영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니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워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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