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2,3장에 나오는 일곱교회 중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라오디아교회에게도 열심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셨다. 열심은 꼭 주의 일 뿐아니라 모든 일에 열심을 내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다.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장사꾼은 장사를 열심히 해야 하고 목회자는 목회를 열심히 해야 한다.
본문은 천년왕국 그리스도의 나라가 여호와의 열심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으로써 그 나라에 들어갈 사람고 그 열심을 받아야지만 천년왕국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열심을 회복하자.(히11:5-6)
회복된 열심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열심이라면 그 의미가 없는 것이다. 에눅의 삶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온전히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이었기에 300년동안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에녹의 열심을 본받아 1년 365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열심을 회복해야 겠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열심은 예배에 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 시대에 맞는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올려드려지는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항상 동행해 주시는 것이다.
엘리는 삼대 직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며 그의 가족 전체가 저주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엘리의 그늘에 있던 사무엘에게 비록 나이가 어려도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해 드렸기에 삼대직분을 주어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게 되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데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처지를 뛰어 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원망이나 불평이 가득한 삶이 아니라 자신감을 회복하여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려는 열정이 회복되어야 한다.
인간은 내가 기뻐져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려는 게 큰 난제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실때, 그분이 기뻐 하시니깐 내가 기뻐지는 것이 순리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 그 기쁨이 내게도 충만해지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열심을 회복하자.
무작정의 열심은 의미가 없다. 학생은 학교를 열심히 다녀 개근상을 타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수업을 열심히 들어 좋은 성적을 얻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마6:10 하나님의 뜻에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 은혜시대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에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다.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데 다시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이는 환난시대 하나님의 뜻으로 이 땅이 그리스도의 나라로 천년왕국(계11:15)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다. 심판주 예수님이 강림하셔서 저주 받은 이땅을 에덴의 회복시키시는 것이다.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은 내가 믿는 믿음으로 믿음면 되고 앞으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종이 되어야 하며 그러한 종들이 열심을 회복해야 한다.
사55:10-11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다시 하나님께로 가지 않고 그 뜻을 이루는 일에 형통한다.
마7:21-23 아무리 열심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을 모른고 일을 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환난시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열심을 내는 자가 되어야 한다.
환난시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여호와의 열심이 운행하고 있으며 그 뜻을 이루어 드릴려고 하는 종들에게 들어가 운동하고 격동하여 열정이 살아나게 된다.
3. 모이기를 힘쓰는 열심을 회복하자.(습2:1-2)
여호와의 열심이 들어가야만 모이기를 힘쓰게 된다. 열심이 식어지면 열정이 식어지면 교회에 오는 것이 귀찮아지듯 여호와의 열심이 있는 사람이 모이기를 힘쓴다.
사2:2-3, 미4:1-3에 보면 말일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몰려 온다고 예언되어 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방법으로 사람을 모으신다는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아래 택한 종들을 모으신다는 것이다.
성령의 생수가 흐르는 곳,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곳, 임마누엘 날개로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곳, 진리의 성읍으로 하나님이 사람들을 모이게 하신다.
마지막 환난시대에는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4. 사람을 살리려는 열심을 회복하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였다면 우리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열심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뜻이다.
말세복음을 전할 때도 그 전도의 대상을 지혜롭게 택해야 한다. 무작정의 열정만 가지고 다닌다면 체력만 소모된다. 그러므로 단12:3 같이 사람을 살리는 지혜가 있는 종이 되어야 한다. 말세복음은 은혜시대 복음에 한계를 느끼고 더 깊고 오묘한 말씀을 갈구하는 사람들, 선지서와 요한계시록을 왜 회피하는지 의문이 있는 사람들이 받는다. 환난시대 뜻이 있는 사람은 은혜시대에 무엇을 해도 잘 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을 살리는 열심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지혜도 필요하다.
사람이 미워지지 않는 사람이 사람을 살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가장 가까운 남편, 아내, 자녀등 자신의 가족부터 사랑하여 살리는 자가 되야 겠다.
사람을 살리려는 열정이 회복받아야 겠다.
5. 엘리야 같은 열심, 바울 같은 열심을 회복받자.
엘리야 같은 열심은 기도하는 열심이다. 기도하는 교회, 기도하는 가정, 기도하는 생활, 기도하는 체질로 바뀌어야 한다.
바울 같은 열심은 전도하는 열심이다. 전도하는 열심은 바울을 따라올 자가 없다. 과거에 전도는 "예수 믿으세요" 였지만 이제는 선지서와 요한 계시록을 전하는 전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