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권역사를 내리시는 하나님. (슥3:1-5)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다. 이것이 종말의 역사이다. 우리가 아무리 유능해도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강권역사를 내려주시지 않으면 우리라고 하는 존재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강권역사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존재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줄 아는 착각속에서 깨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섭리있는 사람들에게 강권역사를 내리신다. 강권역사라는 말은 은혜시대에선 들어본적 없는 말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에게 강권적으로 내리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사를 들어보고, 물어보고 내리시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내게 일방적으로 내리시는 역사이다. 우리의 마음이 좋은 쪽으로 변화가 되느냐, 자꾸 꼬이느냐. 사단이 우리에게서 떠나면 마음상태가 좋아지고 사단이 자꾸 붙으면 마음이 꼬이고 안좋아지는 것이다. 그것을 분별하여 몰아내야한다. 사단이 심령에 들어오면 심령이, 가정에 들어오면 가정이, 교회안에 들어오면 교회가, 사업장에 들어오면 사업장이 꼬이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바로보고 하나님이 주시는 강권역사를 절대 놓치지 않는 종들이 되자. 말세에 선택받은 승리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의 의견, 생각을 전혀 무시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강권역사를 내리시는 것이다. 그런 강권역사를 요셉에게도, 모세에게도, 엘리야에게도 내리셨고 앞서간 선진들에게도 그렇게 역사하셨다. 우리에게 명령을 하달하시는 여호와시다. 말씀앞에 우리를 복종시키고 그 말씀앞에 순종하는 것이 겸손이다. 말씀이 아니라 하는 사람은 심판을 면치못할 사람이다. 강권역사를 받아 승리자의 명단에 올라가자. 정말 하나님앞에 낮아지고 회개하고 겸비한 모습을 보일때이다. 하나님의 큰 긍휼을 입을때 강권역사를 받을 수 있다. 1)사단을 쫓아주시는 강권역사. (슥3:1)
여호수아는 슥3:8에 보면 우리의 예표의 사람이라고 했다. 사단을 쫓아주시는 강권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등장한 인물 여호수아는 우리시대에 예표가 되는 인물이다. 여호수아에게 일어나는 성경적 사실은 우리시대에 우리에게 일어날 그림자, 예표인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신령하다해도 그 당시 대제사장을 지내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비기겠는가. 스룹바벨 유다 총독, 선지자 학개, 대제사장 여호수아로 스룹바벨 성전건축에 힘을 쏟았던 인물중 하나이다. 그 여호수아와 스가랴선지는 우리의 예표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단을 쫓아주시는 하나님의 강권역사를 필요로한다. 몽둥이를 휘둘러 사단을 쫓을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겠는가. 사단은 마4:1-11에 예수님에게까지와서 시험했던 사단이다. 욥의 집을 풍지박산으로 만들었던 사단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로 선악과를 따먹게했던 장본인이다. 우편이라 함은 가장 가까운 측근에서 역사한다는 뜻이다. 그 사단을 쫓아주시는 강권역사가 일어나야만 그 순간부터 승리자가 될수있다. 사단이 옆에 있을 때와 사단이 쫓겨갔을 때의 환경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 곁의 사단을 하나님이 쫓아주실때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다. 생각의 변화, 신앙의 변화, 사상의 변화, 생활의 변화, 환경의 변화가 일어난다. 영육간에 전반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것이 사단이 쫓겨가고 변화받은 승리자의 모습이다. 여호와가 사단을 강권적으로 쫓아주실때 승리자의 모습으로 변화되어야한다. 변화된 그 모습이 승리자의 모습이다. 승리자의 모습은 자신감이 있다. 당당하고 변화된 모습을 남이 봐도 알수 있다. 우편사단을 쫓아주시고 우리를 승리자의 모습으로 만들어주신다. 2)불속에서 꺼내놓으시는 강권역사. (슥3:2)
시련과 연단속에서 꺼내놓으시는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금은같이 연단한다고 했다. 그 연단의 불속에서 스가랴 선지는 꺼내놓으신다고 했다. 꺼내놓은 종을 그슬린 나무라 지칭했다. 그슬린 나무라는 것은 겉모습과 속모습의 다른 점을 말한 것이다. 여호수아같은 말세에 사명있는 종은 겉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겉모습은 새카맣게 그슬렸지만 속모습은 다르다. 속모습은 하얗고 단단하다. 이것이 겉모습과 속모습이 다른 그슬린 나무이다. 우리의 신앙이 이렇게 변화되어야 한다. 하얗다는 것은 성결, 단단한 것은 견고함이다. 겉모습은 새카맣고 누가봐도 형편없는 모습이나 그 사람의 속은 성결되고 견고한 것이다. 강권역사를 내리시는 하나님은 택한 종을 정한 기한까지 불속에 넣어 연단하신다. 그러다가 그 불속에서 꺼내놓으시는 강권역사가 일어난다. 그슬린 모습을 벗으면서 성결된 모습, 견고한 신앙, 견고한 사상을 가진 모습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반대로 겉은 깨끗한데 속이 시커멓고 흑암이 잔뜩 들어있고 꼬여있다면 그 사람은 절대 승리자의 모습이 아니다.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하나님이 때가되면 불속에서 꺼내놓으신다. 이기고 또 이기는 승리하는 종으로 승리자의 반열에 두시기 위해 불 속에서 꺼내놓으신다. 더이상 시련과 연단을 그 사람에게 줄 이유가 없어야한다. 누구라도 속이 성결되고 신앙이 견고해졌다면 불속에서 꺼내놓으시고, 아직도 인간성 죄악성, 교만이 가득하다면 시련과 연단을 더 겪어야 할것이다. 불속에서 꺼내놓으실수 있는 권한은 하나님께 있다. 불속에서 꺼내놓으시는 역사를 받는 교회나 가정이나 개인은 놀라운 기적을 받게된다. 남에게 비춰지는 모습은 신경쓰지 말고 하나님께 비춰지는 내면세계의 모습이 성결되고 견고해지는 것을 보여드리자. 이런 모습으로 변화되는 모습이 강권역사 받은 승리자의 모습이다. 3)더러운 옷을 벗겨주시는 강권역사. (슥3:3-4)
변화되지 않은 옛사람의 모습을 내가 노력하고 수고하여 벗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벗겨주셔야 한다. 사20:2-3에 보면 이사야가 선지자로 나설때 여호와께서 옷을 벗기고 발을 벗겼다. 옷을 벗었다 함은 옛사람의 모습을, 발을 벗었다 함은 옛사람의 생활을 벗게하신 것이다. 옛사람의 모습도, 생활도 벗어야 한다. 옷도 벗고 신도 벗었으니 사람이 보기에 수치스런 모습같지만 그 모습이 승리자의 모습인 것이다. 첫째아담 닮은 모습과 생활을 벗는 것이다. 벗을 때 죄과가 제하여졌다. 벗은 것은 옷인데 죄과가 제하여진 것이다. 죄과를 벗어버린 모습이 승리자의 모습이다. 우리 모두 첫째아담 닮은 옛사람의 모습과 생활을 모두 벗고 승리자의 모습, 승리자의 생활을 가지고 복음의 선두에 서자. 승리자의 모습을 갖추고 복음의 선두에 서야 하겠다. 4)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시는 강권역사. (슥3:4)
예수님의 형상을 이룬 종의 모습이다. 이것이 우리 노력으로, 우리의 수고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하나님이 더러운 옷을 벗기시듯 강권역사로 아름다운 옷을 입히셔서 변화된 모습을 갖추게 하신다. 예수님의 형상을 이룬 모습은 본이되는 모습이다. 말과 행실과 사랑과 신앙과 정절과 생활에 본이되어야 한다. 본이 되게 사는 것이 예수의 향기를 날리는 삶이다. 이런 향기가 교회마다 가정마다 진동할때 많은 사람을 살리게 될줄 믿는다. 5)정한 관을 씌워주시는 강권역사. (슥3:5)
정해진 종에게 그 관을 씌워주신다. 정한 관을 씌우사 승리자로 만드시고, 승리자의 모습을 갖추고, 승리자로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역사해주신다. 인생관, 신앙관, 사상관, 물질관, 생활관, 가치관, 이성관, 미래관, 내세관이 바뀌게 된다. 사람의 관념이 바뀌게 되므로 그 사람이 변화될수밖에 없다. 그럴때에 우리 앞길은 형통해지고 평탄해진다. 사단이 아닌 여호와의 사자가 곁에 서서 승리자의 삶을 보장받게 된다. 승리자의 보장된 삶을 살아갈수 있게 하신다. 결론 : 여호와의 사자를 곁에 세워서 승리자의 보장된 삶을 살게 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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